봉래인형이야기-봉래와 상하이 앨리스[2-2] 봉래인형이야기

분명 처음 뵙는 ZUN입니다.
오랫동안 창곡활동을 해 왔습니다만,무심코 음악 CD를 내게 되었습니다.
내용이라면, 실로 시대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레트로 러브인 겁니다.
특히 지금의 소쇄한 락댄스계 게임 뮤직이 아니고,
한 옛날전의 스트레이트한 게임 뮤직을 좋아하는 분에게 최적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소녀틱해져 있기 때문에,
그러한 취미인 분도 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동양풍과 서양풍으로,
앤티크한 오리지널곡을 작곡해나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이 CD를 들으면 왠지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든간에 길을 벗어나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겠지요.
봉래인형은 「비 치유계」CD인지도 모릅니다. 목을 매달질 않나.

 2002.8.11 ZUN (정직촌의 사생아, 가장 고소공포증인 나)


- 봉래인형 C61발매판에서 ZUN의 코멘트 -


다시한번 정리해보자면 봉래란 다프카디오 헌의 환상과 타케토리모노카타리의 이야기가 조합된 오리엔탈리즘의 상징이다. 이것을 상징하는 ‘봉래의 약’은 다프카디오 헌을 비롯한 인간이 소망하는 영원한 생명과 그것을 함부로 건드릴수 없는 금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호라이산 카구야라는 인물을 통해 전설적인 면모를 강조시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점이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란건 앞서 말했듯이 ‘서구가 일본에 가지고있는 환상’이다. 달리말하자면,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황당하며 오글거릴수 있는 내용이다. 동방프로젝트는 ZUN, 일본인 오타 준야太田順也가 만들었다. 그렇다면 동방프로젝트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이 서구인이 꿈구던 일본을 상상하며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무슨 형용할수없는 시추에이션인가. 이 점을 언급하기 전에, 우리는 잠시 초점을 돌려 ‘상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봉래가 오래엔탈리즘이라면 상해는 옥시덴탈리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이 서구가 낭만화시킨 동방을 의미한다면, 옥시덴탈리즘은 서구를 모방하고자 했던 개화기 동양의 풍조를 말한다. 일본의 개화기라고 한다면 당연히 메이지유신이 연상된다. 그런데, 왜 상해일까? 메이지시대에 상해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것일까? 필자는 메이지유신도 17년의 상해도 연관성도 잘 모르지만, 메이지 유신의 중국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설명할수 있을것 같다.

메이지 유신의 모토는 유학의 수용이다. 애당초 유신이란 단어자체가 시경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일본은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봉건제를 유지해온 나라중에 하나이다. 약700여년동안 사무라이를 중심으로한 봉건체제를 유지하게 되는데 전국시대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하급무사들은 해당 영주(다이쇼)들에게서 녹봉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문제는 도쿠가와 막부이후 약 300여년간 평화상태가 지속되었고, 상인계급들이 성장하여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무사가 녹봉을 인상받으려면 전쟁을 통해서 공훈을 세워야 하는데, 지속적인 평화로 인해 공훈을 세울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젊고 능력있는 하급무사들을 중심으로 점점 불만이 쌓여가게 되었다.

이를 통한 해결책이 관료제의 도입이었다. 사무라이들은 더이상 전사의 자질보다 관리로서의 능력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평가받는것은 과거제도였다. 가난과 신분한계에 묶여있던 하급무사들에게 유학을 공부하면 인생역전의 기회가 생긴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일본은 중국의 요순시대를 롤모델로 중국의 유학서적들을 반입하고 공부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버린다. 일본이 중국을 롤모델로 삼기에는 아편전쟁에서 진 중국의 현실이 매우 암담했기때문이다. 일본은 유학의 이상을 실천한 새로운 태평성대를 찾아야만 했다. 사실 이 문제는 매우 간단했다. 당시 세력을 확장하던 서구의 열강들을 롤모델로 삼으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리하자면 이거다. 신분상승을 위해 유학적 이상향을 꿈꾸던 신진세력들이 서구의 문명을 수용하게 된것. 이것이 메이지 유신의 정체성이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았을때 당시 중국의 이미지는 일본의 서구문화수용과정의 중간 단계이자 부산물이라고 이야기 할수 있을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서구를 따라하는것이 아니다. 일본의 카레라이스는 원산지 인도의 카레와 절대 같은 음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본식 서구화의 목표는 지극히 일본적이다.


좀 더 나아가보자, 우리는 봉래와 상해에서 어떤 유기적인 관계성이 있다라는 것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봉래는 오리엔탈리즘의 기호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일본인의 시선에서 서구가 상상했던 환상의 일본을 재해석하는 ‘자발적 오리엔탈리즘’이다. 그리고 상해는 옥시덴탈리즘, 엄밀히 말한다면 서구의 롤모델을통해서 서구와는 다른 일본 문화를 만들어내는 ‘자각적 옥시덴탈리즘’이다.

이점을 생각했을때 동방에서 일견 중구난방으로 언급되는 봉래와 상해의 소재가 어떤 규칙으로 사용되어지는지 정리할 수 있다. 가령 앨리스라는 마법사는 호라이(봉래의 일본어발음)와 상하이라는 스펠카드를 가지고 있다. 정황상 앨리스는 두 인형을 거느리는것으로 추측되는데 ‘앨리스’라는 이름이 루이스 캐롤의 작품’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연상되는것을 생각해본다면(그리고 그 작품이 일본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것을 생각해보면) ‘앨리스’라는 이름은 소녀가 등장하는 동방의 규칙에서 서구 그 자체를 상징하는 스텐다드한 네이밍으로 해석할수 있을것이다.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모두 서구에서 출발한 것이라는것을 생각해볼때 그녀가 봉래와 상해인형을 거느리는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더불어 첫 작품으로서 ‘봉래인형’을 발매한 ‘상하이 앨리스 환악단’의 의미도 동양풍과 서양풍이 어우러진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해석할수 있을것이다. 후지와라노 모코우의 봉래의 인형도 영생과 저주에 대한 오리엔탈 판타지, 홍 메이링이 서양식 저택의 문지기인 이유도 상하이라는 스펠카드로서 설명이 가능하다.

게다가 이 떡밥을 넓게본다면 순호와 헤카티아의 관계성도 얼추 들어맞는다. 상당히 옜날 떡밥인 주제에 아직도 안끝났다.
필자가 제작년 일본여행을 가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는 오사카 구석에 있는 신세카이라는 곳이었다. 좁고 허름한 가게에 갓 튀긴 구시카츠와 맥주를 서서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철로만들어진 천수각, 츠텐카쿠로 대표되는 신세카이는 근대화의 상징이자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허름한 느낌이 더 많이 나는, 최근까지도 치안이 좋지 않은 거리였다가 관광지로 개편된 그런거리였다. 사실 봉래고 상해고 어느정도 철 지난 이야기다. 서구의 문물을 수용하여 근대화를 이룩하겠다는 모토는 일본뿐 아니라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구닥다리 느낌이 물씬 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당시에 느낄수 있었던 과거의 열정은 한편의 추억이 될 수도 있는것이다. 동방프로젝트는 과거를 추억하는 작품이다.








이 글은 코믹과 온리전등 동방프로젝트와 관련된 동인활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비평집 <봉래인형 이야기>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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