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한의 팬텀월드 전체리뷰 서브컬처








무채한의 팬텀월드 전체리뷰

팬텀월드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팬텀이란 무엇일까? 본 작의 설정은 일본의 전통적인 요괴관념을 심리학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일본의 요괴관념은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명확하다. 악행을 많이 쌓으면 요괴, 선행을 많이 쌓으면 신이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얻고, 그 두려움을 많이 받으면 강한 요괴가 되고, 사람들에게 잊혀지면 존재가 소멸당한다. 신도 받은 존경에 따라 계급이 나뉘어진다. 그들에게 있어 불교든 기독교든 800만 신중에 하나일뿐이다. 독실한 교인이 보면 팔짝 뛸 종교관념이다. 어째서 일본은 이런 오묘한(?)종교관을 가지게 되었을까?

전통적으로 일본은 살기나쁜 공간이다. 덥고 습한 일본은 질병, 태풍과 지진, 화산등의 자연재해를 마주하며 살아온 역사이다. 착한 철수도 욕심많은 민수도 자연재해앞에서 '한방'인데 선행을 쌓으면 극락이니 천국간다는 애매모호한 이야기가 잘 통할리가 없다. 일본은 관념론보다는 경험론이 발전을 하였고 눈에보이는 이 현상을 신과 요괴라는 시각적이며 체험적인 존재로 형상화 시켰다.

자연재해는 선악이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요괴도 보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따라서 신이 될수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팬텀'은 림보도 추고 연극도한다. 다른 팬텀의 소원을 들어주려다 깽판치는것을보고 당황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인간적이다

무채한의 팬텀월드는 주인공앞을 가로막는것들은 다 '적'이라고 보는 캐캐묵은 아니메의 연출에서 탈피했다. 본작은 선과 악의 개념이 없다. 그저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팬텀들을 두들겨 패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미인계를 쓰기도 한다. 보는 내가 홀릴것 같은것은 덤이다.

선악에서 자유로워진 시나리오는 무엇을 이야기할까? 사람의 이야기이다. 본작의 인물들은 어떠한 경험을 했고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아니메에서 더이상 우주세기의 외계생명체의 위협이나 이뤄질때까지 무한히 루프하는 사랑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조금 더 현실적이며 개인의 감성에 솔직한 이야기를 해나간다. 쿄애니는 이런면에서 공격적이다. 여간 고집이 센게 아니다.




무채한의 추억은 방울방울

무채한, 원작이 따로 있다지만 매우 쿄토스러운 센스이다. '헬베티카 스텐다드',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등, 쿄애니가 뭔가 시각적인 단어를 사용해주는것에 재미를 들인것 같다. 색채에 제한이 없다는 말은 굉장히 직관적이면서 시각적이다. 무채한의 팬텀들은 사람들 뇌에서 비롯한 인지로서 기능한다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묘미는 사람의 사고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하냐는데 있다. 무채한의 팬텀월드는 세계관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성하였을까? 자주 나타나는것은 아니지만 도트와 같은 디지털 요소로 표현하는것 같다. 사실 팬텀은 인체의 뇌와 관련이 있는것이니 디지털로 표현하는것은 어색하다. 어째서 이런식으로 표현했을까? 그럴듯해서라고 말해도 할말없는 부분이지만, 이전에 유포니엄에서 감독이 카메라에 집착했던 이유를 상기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웠을 듯한 학창시절, 속칭 '응답하라 유포니엄'을 묘사하기 위해 카메라1)라는 아날로그적이면서 고전적인 요소로 세계관을 구성하였다. 유포니엄같은 작품도 세계관을 재 해석한 감독이라면, 팬텀월드의 도트도 이유가 있을것이다.

나는 미래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밝고 쾌활한 젊은이들의 세계를 구성하기위해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도트를 사용하였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도트도 묘하게 오래된 소재이다. 풀HD의 시대에 도트가 왠말이랴? 결국 이작품도 이시하라 감독의 특징이라고 할수 있는 추억을 더듬는 작품이 되었다. 사실 당연한거였다. 팬텀은 사람의 뇌가, 다시말해 사람의 기억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것이 마지막화의 작은 팬텀아닌가.

중간중간 화면 넘어갈때마다 CM송마냥 들리는 멜로디가 있는데, 그중의 한 곡이 Kanon의 주제곡같은느낌이 드는것은 기분탓일까? 누가 KEY빠 아니라고 얘기했는지는 몰라도 '추억'은 이시하라 타츠야 감독의 작품들에서 수시로 언급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무채한의 색슈얼리티

최근 서브컬처에서 섹슈얼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가고 있는것 같다. 사실 일본이 너무 방관했던것도 사실이었다. 논란이 많은 이야기이지만 나의 입장은 이렇다. 섹슈얼리티를 즐기는것은 혐오할 일이 아니다. 섹슈얼 자체를 즐기는것은 건전한것이나, 왜곡되게 소비하는것은 문제이다. 그런의미에서 '시모네타'라고 불리우는 최근 아니메의 동향은 환영할만하다. 에로티시즘의 맥락을 분리하여 병적으로 집착하는것을 막고2) 이미지만을 소비하는것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쿄애니도 이번 작품을 통해 "마다야루노?"를 히트시키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결코 격하지 않다. 쓸데없는 노출도, 관음증적인 카메라워크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다.

열에 아홉은 마음에 드는 작품이지만, 이작품에서 비판적으로 봐야할점이 분명히 있다. 아라야시키사의 바이러스 유포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는것이 아예 없다. 사람들의 뇌세포를 바꾸어버린 것은 윤리적으로 엄청난 문제가있는 사건이다. 이러한 이야기 없이 팬텀의 인권을 운운한는것은 완전히 본말전도이다. 설마 바이러스의 감염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것인가??

애시당초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이야기는 그들과 어떻게 공존할수 있을것인가에서만 초점을 맞출 뿐 원인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들의 태도는 현실적인 의미에서 커다란 문제가 있다.

장담한다, 무채한의 팬텀월드의 세계관의 모티브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이다. 일본만큼 사람들이 원자력을 무서워하는 나라는 흔하지 않다. 세계에서 유일한, 게다가 두번이나 원폭을 맞은 나라이다. 이들의 원폭과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고질라같은 오염된 생물체를 만들어내고, 아키라와 같은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식 종말을 만들어낸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사고는 워낙 오래되어 잊혀져 가던 일본인들의 원폭에 대한 공포를 다시 부활시켰다.

그러나, 원전이 고장난 사건만으로 세계종말을 운운하기에는 임팩트가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다. 현재의 일본사회가 느끼는 공포는 폭발로 인한 소멸보다는 방사능에 의한 오염이다. 현재로서는 일본을 뒤덮고 있는 방사능이 일본인들에게 어떤 피해를 가져다줄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 살고 있는 작가가, 자신도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았을까 불안한상황에서 무채한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면, 그 오염을 나쁘게 묘사해서 불안을 증폭시키지는 않을것이다. 팬텀월드의 탄생비화를 자신있게 추측해본다. 무엇보다 아리야시키와 도쿄전력은 너무 비슷하다.

이러한 불안심리에 태클을 걸고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을 덮어놓고 소설만 쓰고 있으면 안된다는것이다.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것은 희망이고 선택이 될수 있어도 아리야시키사가 왜 바이러스를 퍼트리게 되었는지는 밝혀내야할 의무이다. 그래야지 도쿄전력이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고 불기소 처분을 받는것에 항의를 할수 있다.

일본인들은 방사능의 원인을 정치적인 이해관계의 산물이라고 보단 일종의 자연재해로 판단해버리는듯 하다. 히로시마도 그랬고 나가사키도 그랬다. 원폭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재앙이였지만 인간성을 저버린 일본제국주의의 인과응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후쿠시마의 발전소사고 또한 자연재해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일본정부에 소송을 걸고 보상을 받아내며, 아베정권의 시대를 역행하는 우경화정책에 제동을 걸어야한다. 일본국민 그들이 직접해야할 일이다.

사회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문화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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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근의 영화연출에 있어 카메라는 시너지를 내는 요소로 작용하지 그 자체가 중요시되는것은 히치콕같은 고전 영화에서 그 경향이 강하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지만, 그는 사실 주류라기보단 굉장히 보수적인 스타일의 영화감독이다.

2) 대충 이런식이다. 팬티라는것은 순간적으로 노출되어 흘끗 쳐다보거나 부끄러워하는 소녀가 연상된다. 하지만 '야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지루한 세계'는 팬티를 뒤집어쓴 나체의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팬티에 기대한 상식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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