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려라! 유포니엄>왜 이렇게 카메라 연출을 사용했던걸까? 서브컬처






상징성을 바탕으로 사물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추상적인 도안과 인물의 배치를 중시하는 중세의 교회미술가들에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상당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배경이 뒤로갈수록 안개에 가려진것처럼 뿌옇게 그려지는 공기원근법의 발명, 중세미술에 대해 모나리자는 "왜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는가?"라고 일갈합니다. 

<울려라! 유포니엄>의 카메라 연출은 그래서 오묘합니다. 왜 그렇게 카메라 연출효과를 내는데 집착을 하는것일까요? 이게 얼마나 어색하고 이상한것인지는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이큐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이것은 카메라로 찍은것이다.' 

다시말해 울려라! 유포니엄의 인물들은 연기자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니메에 굳이 연기임을 언급할 이유는 없습니다. 유포니엄같은 청춘 드라마는 더욱 그렇고요. 

그렇다고 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만들었다는것은 말이 안되는게, 아니메는 일일히 다 그리고 만들어야 하는것이니만큼 콘티에서부터 작품까지 제작자들의 상념이 많이 들어갑니다. 아니메에 영화와 같은 즉흥은 없습니다. 의도가 없는 연출이란 없다고 말할 수 있으니 울려라! 유포니엄에서는 불필요한 효과를 넣어준 만큼의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이글루스 네임드 블로거의 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의 드라마로 말할 것 같으면 물론 영화도 그런데요...화면이...지나치게 깨끗해요. 선명함의 의미에서 깨끗함. 예술적인 의미에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냥 깨끗하거든요. 인간의 눈은 무척 고성능이긴 하지만 실은 그정도까지 고성능인 것도 아니거든요. 몇년전에 토이 카메라가 유행했잖아요? 그걸로 찍으면 흐릿하고 지져분하게 찍히지만 그런게 먹히기도 하잖아요?

말하자면 인간의 기억 안에서 재생되는 비전은 선명하지 않거든요. 그런걸 재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의 과제는 화면이 흔들리는 핸드 헬드 카메라풍 화면을 말이져...그거 어렵잖아요?


[출처 : 의지있는 크릴새우님의 이글루스 - maidsuki.egloos.com/4205070 ]


감독 이시하라 타츠야의 말을 비유하자면 한마디로 응유찍은겁니다, 응답하라 유포니엄...

<울려라! 유포니엄>은 어느 누군가의 '회상'입니다. 아마 이 '누군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시청자들이자 감독본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이거 참 재미있는 비유입니다. 이시하라 감독의 말은 두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인간의 눈과 기억은 깨끗하지 않다는 말과함께 시각적 기억을 어떠한 매개체로 치환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시하라 감독에게 있어서 추억은 광학카메라의 초점이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시하라 타츠야 감독의 세계관은 최근의 작품 <무채한의 팬텀월드>에서도 드러납니다. 뇌신경의 변이로 보이게 되는 팬텀월드는 마치 픽셀화면이나 데이터로 묘사됩니다. 중간에 웨어러블 기기가 개입된것도 아니고, 오로지 인간의 기억만으로 데이터가 시각화된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아무래도 미래세계를 다루니까 이런 묘사를 했겠거니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제가보기에는 데이터와 친숙한 젊은이들의 세계를 구성하기위해 이런 연출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포니엄은 회상, 팬텀월드는 진행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제게 있어 애니메이션과 아니메는 너구리와 라쿤,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오리와 오리너구리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니메가 영화를 흉내내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영화를 흉내 낸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사대주의에 빠져있는것 같아 기분이 나쁩니다. 하지만 유포니엄을 이렇게 해석하자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아니메가 영화를 흉내내는것도 어찌보면 시대의 요구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래도 그 시대는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덧글

  • 늅실러 2016/03/01 06:46 # 답글

    아니메가 영화, 특히 '렌즈'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꽤 된 일이라고 봅니다. 특히나 어안렌즈를 이용한 연출 등은 이미 90년대에 많이 쓰였죠.

    오시이 마모루의 말을 빌리자면 "<애니메이션>으로부터 파생한 극영화로써 <아니메>의 영상은, 그 연출적 기준을 화면(絵面, 그림)이 아니라 오히려 실사 영상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http://noobcoela.egloos.com/2558488

    오히려 그보다는 왜 굳이 '그러한 렌즈'를 썼는지, 그러니까 어떤 기억을 환기 시키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볼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 아는척하는 에스키모 2016/03/01 10:50 #

    일단 영화적 연출이 쓰여진 작품들은 데이비드님 말씀대로 어떠한 렌즈를 썼는지, 어떠한 기억을 연출하였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는것은 맞다고 봐요.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영화의 깊이로만 봐서도 상당히 얕은 요소로밖에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렌즈는 기억만을 담아내는것이 아닐텐데 아니메의 영화적 표현은 기억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화적인것도 아니메적인것도 아닌 일본 근대사에서 기인한 '노스텔지어'라고 봅니다.
  • 아는척하는 에스키모 2016/03/01 10:51 #

    아니메의 영화적 연출이 오래되기야 데츠카-린타로때부터 내려왔고 데자키 오사무처럼 평생 렌즈만져가며 만화와 영화를 접목시키는 실험을 했던 감독도 있지만 거기까지 얘기하는것은 너무 스케일이 커져버리니 담번에 기회가 된다면 얘기하겠습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대표적인 영화 사대주의자인게 아니메를 왜 영화의 종속개념으로 보냐는 겁니다. 렌즈의 고스트, 특수한 극영화라는 이해할수 없는 말을 설명해주지도 않는 불친절함은 오시이 본인이 "이럴거면 영화 찍지 왜 아니메를 만드는가?"에 대한 대답을 하지못해 우물쭈물 거리는것 아니겠어요.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아무리 용을써도 헐리웃의 블록버스터영화는 못만듭니다. 제한된 제작환경안의 욕망이라는 말은 결국 헐리웃 영화를 찍고싶어서 아니메를 이용해먹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능한 기술을 모두 도입해서 뇌속의 영상을 실현시키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시이의 영화는 아무리 좋게봐도 아니메의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보이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렌즈에 근거해서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거라면 렌즈로 직접 세상을 찍어야 되는거비 굳이 사람의 기억과는 다른 그림을 그려서 그걸 렌즈로 찍으며 '이건 미학이 아니다'라고 중얼거리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 늅실러 2016/03/01 19:37 #

    오시이 마모루는 "이럴 거면 영화 찍지 왜 아니메를 만드는가"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해 우물쭈물한 적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극영화"를 찍어왔고, 그 극영화(=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하나의 장르로써 아니메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TVa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적습니다. 실제로 2015년에 오시이 마모루는 실사 영화만 세 편 찍었는데, 그것은 애니메쪽에서 리퀘스트가 없기 때문이지 애니메란 표현법을 버린 것은 아니라고 명언하고 있습니다.

    즉, 오시이 마모루의 입장은 아니메를 어떤 기술에 근거한 것으로 보는 것이며, CGI 이후의 영화를 "아니메"로 봐야한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링크한 글에서 "뇌리에 깃든 영상은 어떠한 기술을 이용해서라도 실현시킨다"라는 문장에서도 암시되고 있습니다)

    아니메의 영상이 그 자유를 획득했다고 하기엔 이미 캐릭터의 인물성이나 등신에서 많은 부분이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아니메에서, 어떻게 '깊이감(奥行き)'이나 '등신비'. '소실점(퍼스)'의 위화감을 최소화하는 일에 기여한 것이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작화력'의 상승을 이끌어온 쿄애니 자신의 작품들에서도 분명합니다. 오히려 그 '아니메'를 극영화로만 제한했던 오시이 마모루의 예상을 뛰어넘은 사태라고 해야겠지요.

    따라서, 저는 아니메만의 효과라고 부르는 것에 과연 얼마나 의의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아니메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 아니메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 가운데 '렌즈'를 중심으로 하는 '광학적 성격'은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쿄애니가 재현하고자 하는 '노스탤지어'는 역시 이러한 광학적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방법론을 헷갈려서는 안되겠지요.
  • 늅실러 2016/03/01 19:24 #

    아, 그리고 렌즈의 '고스트'는 진짜로 혼을 말하는 게 아니라 렌즈 플레어와 같은 왜곡 현상입니다.
    http://www.ishootshows.com/2011/07/13/understanding-lens-flare-ghosting/
  • PFN 2016/03/01 08:10 # 답글

    쿄애니는 그냥 옛날부터 조금씩 이런 연출 해왔어요
  • 아는척하는 에스키모 2016/03/01 10:16 #

    그러면 왜 그냥 옛날부터 조금씩 이런 연출을 해왔는지를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shaind 2016/03/01 10:29 # 답글

    예전에 '언어의 정원'을 보면서 비슷한 의문을 가졌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실제의 카메라로 찍은듯한 영상을 추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었더군요.
  • 아는척하는 에스키모 2016/03/01 11:21 #

    아무리 실제같이 만들어도 실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이 실제로 착각을 해버리는데 있어요. 실제로는 아름다운 공간이 아닌데 내 기억속에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미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아니메의 리얼리티라는건 아름다운 공간속의 개인의 감성을 보여주는, 한마디로 개인의 내면세계와 과거의 추억을 미화하는 장치로 쓰입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이러한 노스텔지어는 우경화의 장치로 쓰여왔습니다. 사쿠라의 미학, 남자의 로망같은것들이지요. 그래서 아니메가 영화흉내내는거 보려면 저는 일단 긴장사게 됩니다. 언제 "우리의 열정적이고 아름다웠던 과거"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케이온 을 만든 쿄애니는 그런데 자유스러운것 같긴하지만 혹시 모르니 좀더 연구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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